스마트 큐레이션
n번방 사용자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 '일베' 본문
1.
심리학 용어로 ‘자극기아(刺戟飢餓)’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자극적인 음식, 자극적인 영상, 자극적인 사진, 자극적인 놀이, 자극적인 활동은 심취하게 되면 더 강한 것을 찾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나르코스> 1화를 보면 70년대까지 마리화나 정도를 피우던 도시 마이애미가 어떻게 코카인 천국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이 나온다. 남미에 값싸고 질 좋은 코카인의 유통 루트가 핵심 이유였지만 결국은 인간은 더 강한 자극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이다.
2.
이 동물적 본성을 억제하는 절제심은 교육과 차단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여기서 교육이란 학교 교육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사회적 경험, 책, 종교, 누군가에 의한 지도 등 다양하다.
그 교육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당연히 인격이 완전하게 형성되기 전 유년기와 소년기 시절이 될 것이다. 때문에 학창시절 집과 학교에서의 교육과 경험은 한 개인의 인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좌우하는 것이다. 심리학이나 교육학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류의 자극은 한번 시작하면 개인의 의지로는 헤어나오기 힘든 수준으로 강력한 것들도 있다. 마약, 도박 등이 그렇다. 때문에 국가의 엄격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왜 콘텐츠가 연령별 심의를 두는가? 해당 연령에 받아 들일 수 있는 자극의 한계 때문이다.
3.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고 우리 생활의 패턴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sns를 한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그룹방에서 친구들끼리 채팅을 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으러 온라인 세상을 다닌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여과 없는 정보의 홍수를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학교성적에만 집중된 교육 시스템에서 감당하기 힘든 필터링 없는 자극적인 정보와 트렌드를 맞이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은 쉽게 ‘자극기아’ 상태에 빠지고, 성인이 되어 봉인이 풀리면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다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지털 시대의 한국에서 자극기어 상태를 만들어가는 중심에 일베라는 사이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4.
일베가 단순 유머사이트에서 ‘패륜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전라도’ ‘여성’에 대한 끊임없는 혐오와 조롱의 콘텐츠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혐오의 영역을 넓혔지만 일베를 대표하는 혐오 콘텐츠는 이 3가지다.
왜 그런 혐오 콘텐츠가 일베에서 생산 되는가?
내가 일간베스트에 오르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극기어 상태에 놓은 유저들과 과시를 통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합해지니 일베에서는 매일 경쟁하듯 혐오콘텐츠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5.
‘자극기어+인정욕구’가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는 동기부여라면 그렇게 많은 수준으로 만들어져서 심지어 외부로 확산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서도 3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는다.
첫째는 익명성이다. 익명성이 없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패륜 콘텐츠를 만들고 전파할 수 없다.
둘째는 집단성이다. 집단의 광기가 있었기에 최소한의 도덕심도 무너뜨리고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 전쟁 중에 더 잔혹한 범죄가 거리낌없이 발생하는 이유도 집단성에서 비롯된다.
이 동질감은 외부에서는 패륜이라는 속가락질을 당하는 일베들이 그들만의 의미를 담은 '이스터 에그'를 끊임없이 외부로 알리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는 n번방 이용자들의 가입 동기와도 일치한다.
세째는 그런 의심이 여러차례 돌았지만 나는 일베와 정치적으로 결탁한 모종의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6.
‘전라도’와 ‘노무현 대통령’의 혐오 콘텐츠는 그들도 모르게 극우사이트가 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민주당을 상징하는 전라도, 그 정당을 대표하는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지도자를 처음에는 가벼운 유머성 조롱에서 뒤로 갈수록 극단적인 혐오로 만들어 가게 되었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그 반대편에 있었던 이들과의 접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일베는 훌륭한 선동매체의 구실까지 하게 되었다. 레거시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 새누리당은 온라인 민심에서는 늘 약세였다.
그랬던 이들이 뉴스, 포털, 커뮤니티, sns, 유투브 등의 온라인의 트렌드를 따라 가면서 자신들 방식대로의 콘텐츠를 만들고 심지어 우호적 여론까지 형성할 수 있던 계기는 일베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온라인 홍위병의 노릇을 충실하게 했다.
일베식 콘텐츠가 적절한 돈과 지지자들을 통해 거의 모든 온라인으로 퍼져 나갔고, 일베식 논리가 온라인 논쟁의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세력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의 시너지로 이런 안 좋은 온라인 문화의 태동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7.
‘노무현’과 ‘전라도’가 ‘혐오’의 정서를 유머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라면 일베의 ‘여성혐오’의 경우는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왜곡된 성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구성애 식으로 표현하면 여성의 몸과 마음을 모르는 남성들이 포르노에서 얻은 정보를 실제와 착각해서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과도한 행동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냥 포르노를 소비하면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소비하는 선에서 멈춘다면 그것까지는 취향이라고 존중이 가능한데 자신도 모르게 여성혐오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고, 가담하고 나아가 n번방에 입장한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현재 일베가 가장 광범위한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8.
며칠 전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현재 일베를 소유하고 있는 이너서클 관련한 기사였다.
현재 일베를 소유한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까지 한 회사인데 이 회사와 관계사들의 수익모델은 ‘성인방송’이었다.
성인방송의 콘텐츠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회원들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성을 팔던가 혹은 '헌팅방송'이라 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중계하는 콘텐츠들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성인방송들은 현행법으로는 처벌 수위가 대단히 경미한 편이다. 1인 BJ만 처벌하면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서 동일한 방송을 해도 무방하다. 왜 하나의 회사가 수많은 성인방송 채널을 유지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9.
아프리카tv에서 시작한 1인 방송은 현재는 유투브가 대세가 되어 스포츠, 게임, 먹방, 음악, 각종 취미와 인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신선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이 중에서 규제를 피해 건너간 성인방송 채널 쪽에는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거나 혹은 이미 불법의 경계를 넘어간 콘텐츠들이 적지 않다.
그 시청자들은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를 요구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채널 및 방송의 운영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사용자들은 “나는 돈을 지불했으니 어떤 가학적인 요구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 포르노에서 가학적인 포르노 그리고 출연자와 상호 인터렉션이 가능한 성인방송이 남성들의 성적 의식을 더욱 왜곡시키는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웹하드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를 내가 지불을 했다고 합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웹하드에는 콘텐츠 자체도 불법인 경우가 많지만 지불한 비용도 웹하드 운영자에게 가는 것이지 원래의 저작권자에게 가는 경우는 드물다.
10.
n번방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있던 성인방송을 모티브로 해서 완벽하고 악랄한 범죄의 모델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채널을 개설하고, 돈을 받고, 이용자들의 등급을 나누고 이용자들이 출연자에게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방식은 똑같다.
단지 여기 출연하는 이들이 협박과 강요에 의한 미성년자들이 많고 이용자들의 요구가 일반 포르노 수준을 초월하는 가학적 행위라는 것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운영 매커니즘은 성인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11.
나는 n번방 관련한 운영자나 이용자들이 대부분 일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대단한 진성회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성혐오 콘텐츠를 오랫동안 보고, 유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산에 직접 참여까지 했던 유저들이고 일베 자체가 성인방송을 수익모델로 삼는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되었기 때문에 그 속의 활동하는 유저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 n번방에서 결제까지 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네이버까페나 일반 커뮤니티에서 놀던 유저들이 한번에 n번방 사용자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실수로 링크를 따라 들어갈 수는 있어도 결제까지 하는 사용자는 접근 과정이나 혹은 범죄를 묵인하고 즐기는 수준의 인간성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첫번째 살인을 우발적이 아닌 소시오패스처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12.
나는 n번방의 운영자는 물론이고 유료 이용자들도 신원 공개를 하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26만명이 되었건 혹은 1만명이 되었건 그들이 공개되면 일베라는 우리 사회에 대단한 해악을 끼치는 사이트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포르노사이트보다 해로운 것이 일베라고 생각한다. 극우, 혐오, 왜곡된 성 의식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일베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13.
좀 다른 이슈지만 어제 SBS가 ‘박사 조주빈’의 신원을 미리 공개한 것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편이다.
경찰로 이송할 때 공개하기로 당국에서 검토를 하고 있었고 실제 국민 여론을 보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SBS가 하루 먼저 단독으로 공개한 것은 어떤 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SBS 기자라는 인간이 가해자의 실명 공개여부는 '언론사 재량'이라는 글을 쓴 것을 보고 내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 저의란 다름아닌 검찰총장 장모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 조선일보도 n번방 관련해서 열심히 아울러 선정적으로 해당 기사에 지면을 할애하더라. 장자연 사건을 생각하면 조선일보의 그런 스탠스는 조금의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다.
n번방에 대한 관심만큼 검찰총장 장모님도 관심을 가져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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